Prodigy의 여행. 2004.09.04~2004.09.04

한 편을 쓰고나면 퇴고를 해야하는데
시간도 없고 귀찮아서 하지 않았다.
그랬더니 대충봐도 글이 이상한걸 느낀다.
다듬을 필요를 느끼면서도
'계속 글을 쓰다보면 여행기가 끝나기 전에
글솜씨가 조금은 나아지겠지'
라면서 그냥 업로드를 해버린다.

난 어떤 목적을 가지고 글을 적는가.
독자를 웃길 수도 없고
감동시킬 수도 없다.
단지 내가 생각하고 느끼고 경험한 것을
사실대로 전달하려는 것.
그것이 이 글을 쓰는 목적이다.

2004. 10. 13. 이른 9시 쯤..

[9월 4일 덩김형 집에서]

  어제는 뭘 하다가 잠이 들었는지 기억이 안난다. 라면을 먹은 것 까지는 기억나는데.. 피곤했나보다. 눈을 뜨니 이른 10시 정도. 가만보니 어제 약속이 있다면서 나가 버린 집 주인(덩김형 : 본명 아님)이 보이질 않는다. 아직까지 들어오지 않은 것이다. 난 덩김형을 보러 온건데, 어제 얼굴을 잠깐보고 지금까지 보지 못했다. 답답할만도 하지만 내가 이런일에 익숙해졌다고 할까..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리고 이게 대단한게 아니지 않은가. 살다보면 이런일 저런일 있는거다. 애인도 아닌데 다음에 만나면 된다는 생각으로 오후 1시까지 덩김형이 오지 않으면 그냥 떠나는걸로 결정했다.
  가죽 보호장구를 입고 바이크를 타는 나에게 비가 오는 것은 치명적이다. 아직 가방도 사지 못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더 중요한건 부츠가 비에 젖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다시 팔아야 되는데. ㅠ.ㅠ 그래서 인터넷으로 기상청에 접속하여 날씨를 확인했는데 새로운 태풍이 올라오고 있다는 소식을 알게되었다. 우리나라에 비가 오는 것은 약 2~3일 후. 그 전에 비를 피할 수 있는 곳까지 가야된다. 비가온다는 소식에 나는 계획을 수정해야 했다. 사실 처음부터 구체적인 계획은 없었고 자기전에 다음날 계획을 짜는 정도였는데, 비 소식에 3일 분량의 계획을 짜야 했다.

  내가 느끼고 본 그대로 전달을 하고싶다. 지도도 마찬가지다. 지도를 자세히 보여주면서도 전체적으로 보여주고 싶다. 내가 지도를 본 그대로 독자에게 보여주고 싶다. 흰색 선은 내가 계획한 경로를 뜻한다. 아직 달리지 않은 길이기에 계획은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 그래서 잘 보이지 않도록 흰색으로 칠했다. 그리고 각편의 마지막에 전체지도를 넣어서 '오늘은 어디까지 왔구나.' 라는걸 실감하도록 만들려 한다. 노란색 RX가 달린 길이라서 전체지도에는 노란색 선으로 칠하기로 했다. 뭐 상황보고 또 바뀔 수 있다. ㅋㅋ

  '형이 올 때까지 기다릴까? 그럼 오늘 하루도 날라가고.. 그러면 비오기 전까지 1~2일밖에 시간이 없는데 그거 가지고 어딜 가냐.. 그럼 태풍이 지나갈 때까지 여기에 계속 머물러야 되자나. 음.... 안되는데. 그럼 오늘 꼭 출발해야 하는거네. 오늘은 소백산까지 가서 자고 내일 오전에 서울로 출발하자. 비 오기 전까지 서울에 도착하면 되니까. 원래는 서울에 이렇게 빨리 갈 생각이 없었는데.. 비 때문에 안되겠다. 그건 그렇고 가방을 사야되는데 서울가서 사려니까 불안하다. 그 전에 비가 올 수도 있으니까. 대구쪽에 가방을 싸게파는 곳 없나? 대구에 들어가기는 싫은데.. 광역시 이상은 들어가지 않기로 했으니까. 빠져나오기 힘들어서 말이야. 음.. 그냥 경산시내에 나가서 찾아봐야겠다. 얼마면 될까? 비싼거 안되는데.. 여행이 끝나면 가방도 필요가 없으니까. ㅋㅋㅋ 근데 소백산 가면 밤에 안추으려나? 산에는 많이 추을텐데.. 그래도 얼어죽진 않을거야. ㅋㅋㅋㅋ 안죽으면 되네. ㅎㅎㅎ'
  떠날 준비를 하다보니 1시가 다되어 간다. 옆에서 꽤나 부스럭 거렸음에도 불구하고 어제 같이 있었던 2명은 아직도 일어나지 않는다. 잠꾸러기들 _-_; 그래서 내가 깨웠던가? 아니던가? 기억이 안나네. 깨운거 같은데. ㅋㅋㅋㅋ 아참. 덩김형은 아직도 안왔다. 전화를 해봐도 받지 않는다. 자고 있나 보다 _-_;; 뭐 담에 보면되지. 난 갈란다.
  "형 오면 저 먼저 갔다고 인사 전해주세요. 그럼.. 안녕히계세요~"
  "아차참. 여기 근처에 배낭같은거 파는곳 없어요?"
  "뭐라뭐라 뭐라뭐라 설명 중 -.-;;"
  "음.. 고마워요. 그럼 안녕히계세요~"
  사실은 제대로 못들었다. 결론은 사람들 많은곳으로 가서 다시 물어봐야 된다는 것!

[9월 4일 날씨 : 오지게 덥다.]

  여행은 계속되어야 한다. 그래서 다시 경상대 앞으로 나왔다. 우선 가방을 사야된다. 명색이 대학교 앞인데 가방같은거 파는 매장 정도는 있을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지나가는 사람 붙잡고 근처에 가방 파는곳 없냐고 물어봤다. 10명 넘게 물어봤을거다. 난 학교 앞에서 해결보고 싶었는데 사람들 말로는 시장에 가야 된단다.
  '오늘은 목적지도 있는데.. 시간낭비하는거 아니야? 음.. 그래도 가방은 꼭 사야되니까 1시간 정도는 써먹자. 1시간 늦게 자면 되지 뭐.'
  이번엔 사람들에게 시장으로 가는 길을 물어서(길 묻는거 다 쓰다가는 4일분량 오늘안에 다 못쓴다. 생략!) 잘~ 찾아갔다. 마침 현금이 떨어진 상태라서 근처 농협으로 가서 4만원을 뽑았다. 혹시 수수료 붙을까봐 1만원씩 4번을 뽑았다.
  농협은 1만원씩 뽑으면 수수료가 무료다. 알아두면 좋아요~
  시장으로 들어가서 처음엔 팬시점에 갔다. 가방코너에서 가방을 살펴봤다. 가격은 2~6만원대. 가격은 괜찮은거 같았다. 난 3만원 미만으로 가방을 사고싶었으니까. 하지만 중요한건 방수가 되느냐 안되느냐다. 직원을 불렀다.
  "이 가방중에 방수가 되거나 방수커버가 있는 가방이 있어요?"
  직원이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다른 직원에게 가서 뭘 묻고 왔다.
  "아니요. 없습니다. 생활방수 정도는 되지만요."
  '음... 생활방수라는게 어느 정도인지 알아야지 사지 -.-;; 애매한 대답을 하네..'
  "알겠습니다. 다른데 보고 올께요."
  나는 팬시점을 나와서 재래시장 골목으로 들어갔다. 사람들에게 물어 가방전문점을 찾아 가봤으나 내가 찾는 가방은 없었다. 4번째 들어간 가게에서 이러이러한 가방을 찾는다고 말했더니 사장님이 열심히 가방을 확인하면서 방수가 되는지 않되는지 확인해 주시더라. 물론 내가 찾는 가방은 없었다. 하지만 사장님께서 일일이 가방의 안감을 확인하면서 등쪽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이 방수가 되는 가방을 2개 찾았다. 이 가방은 지퍼쪽과 등 쪽으로 물이 스며들 수 있지만 왠만해서는 방수가 된다고 하셨다. 그럼 이제 쟈켓이랑 부츠랑 디카가 들어가는지 확인을 할 차례. 자켓과 부츠를 벗어서 조심스럽게 가방에 넣어봤더니 쉽지는 않지만 들어가긴 들어간다. 디카까지 넣어도 들어갔다. 이 정도면 중요한 것은 다 넣은셈인데, 이 가방을 사도 괜찮을거 같았다. 게다가 사장님도 친절해서 다른곳으로 가기 싫더라. 밖의 날씨가 거의 여름날씨였는데 더워서 그런지 목이 말랐었다. 우선 사장님께 시원한 물 한잔을 얻어먹고 비닐도 2장 얻었다. 그리고 너무 더워서 부츠는 가방에 넣고 가기로 했다.

  가방은 꽤 컸는데 그걸 매고 바이크에 앉으니 무슨 3단 합체를 하는 기분이었다. 바이크 + 가방 + 나 = 3단합체. 아.. 탱크백이랑 침낭이 빠졌다. 4단 합체다.
  '가방이 좀 크네. 그래도 이제 비가 두렵지 않다. 댐벼봐라 비야! 푸하하하하하 아싸아싸~ 이제 겁나는거 없고~'
  이제 비가 두렵지 않다는 생각을 하니 기뻤다. 일단 필요하다고 생각되는건 다 가지고 있으니까 기쁠 수밖에. 가방을 사서 경산을 빠져나왔다. 광역시에 들어갔다하면 빠져나오는게 귀찮지만, 그냥 시 정도는 별 부담이 없다. 국도로 나와서 여유롭게 달리니까 좀 시원해졌다. 실드도 열고 쟈켓도 느슨하게 입고 바람을 느끼면서 달렸다. 어디 쯤일까? 제대로 기록을 하지 않아 생각이 안난다. 아무튼 영천과 안동 사이인거 같은데.. 지나가다 보니 뭐 하천 같은게 보였다. 옆으로 자갈밭도 있다.
  '저기 사진찍어놓으면 좋겠네. 좋아쓰~! 바로 저기다. 하천을 따라가다 보면 내려가는 길이 있겠지. 제발 RX로 지나갈 수 있는 길이어라..'
  하천으로 내려가는 길을 찾으려고 한지 1분도 안되어서 왼쪽으로 길이 보였다. 멀리서 볼 때는 그저 자갈밭인줄 알았는데 내려가서 보니까 완전 돌밭이다. 돌덩어리밭! RX를 조심조심 끌고가서 사진을 찍어댔다.

여기서 사진을 찍다보니 너무 더워서 물속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원래 여행중에 물에 들어가서 실컷 놀고나서, 젖은 옷은 바이크에 널어두고 새 옷으로 갈아입으면서 하루를 보내는 것도 생각했었다. 하지만 지금 늦장 부리다가 태풍에 제대로 얻어맞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내일은 경기도에 복무중인 레이싱보이님 면회도 가도록 해야했기 때문에 물장난 치고 놀 시간이 없다. 그래서 사진을 찍고나서 열심히 달렸다. 그래봤자 100km/h를 넘기지 않았지만. _-_;;
조금 더 가니까 이런 곳(밑의 사진 두 장)이 나오길래 또 찍었다. 사진을 찍으면서 느낀건데 배율이 높은거 보다는 화각이 넓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은 여행을 하면서 사진을 찍을수록 더 절감하게된다. 화각이 넓으면 사진 한 장에 더 넓은 면적을 담을 수 있다. 텔레비젼기기 광고 중에 '숨어있는 1인치를 찾아드립니다.'라면서 하는거 본 사람들은 쉽게 이해가 될까? 이해가 안되면.. 얼굴이 커서 사진 한 장에 다 안들어가는 사람들도 화각이 넓은 렌즈로 사진을 찍으면 얼굴이 사진 한 장에 다 들어간다는거지. 음.. 비유가 이상해? _-_;; 그냥 사진이나 구경하자.

정말이지 시간만 있었으면 저기 내려가서 실컷 놀았을텐데..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앞으로 기회는 많으니까 그냥 가기로 했다.

[주유소의 악몽]

  첫날 연비를 대충 측정했다. 대략 30KM/L는 넘었다. 7000원 넣으면 150~180KM정도 타고 다시 기름을 넣으면 문제 없으리라 생각했다. 사진을 찍고 출발하면서 적산거리계를 보니까 이제 기름넣을 때가 된거 같았다. RX에 밥을 주기위해 주유소에 들어갔다. 농협주유소 던가? 주유기 앞에서 정지하고 기름두껑을 열었다. 그런데 아무도 나오지 않는다. 조금 기다리면 직원이 나오겠지 싶어서 몇 십초 기다렸다. 기다려도 끝까지 사람이 안나온다. 나는 키를 On 시키고 크락션을 짧게 두 번 눌렀다.
  '띠~ 띠~'
  (순정 크락션이다. _-_;;;)잠시 후에 할아버지 한분이 나오셨다.
   "가득 넣어주세요."
  만원짜리 한 장을 들고 얼마나 들어가는지 금액과 기름탱크 속을 번갈아 보고 있었다. 얼마 안있어 기름이 차오르는게 보였다.
  '이제 그만해도 될텐데...'
  "그만 넣어주세요. 그만요."
  그런데 그 할아버니는 내 말을 무시하고 계속 넣는다. 기름이 넘쳐흘렀다. 순간 짜증이 났다. 금액을 보니까 7000원이 좀 넘었다. 할아버지도 금액을 보더니 그 할아버지 왈
   "오토바이 흔들어봐~"
  '아니 무슨 기름을 흘려놓고 흔들긴 뭘 흔들어 -.-;;'
  일단 기름이 넘치는 상황에서 기름두껑을 닫을 수도 없다고 판단. 바이크를 좌우로 살짝 흔들었더니 밑에서 공기방울이 올라오면서 기름이 약간 내려갔다. 그럼 여기서 그만 넣으면 될건데 할아버지는 계속 기름을 넣는다. 그것도 기름총을 탱크 깊숙히 쑤셔넣은 상태로 말이다. 그 순간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차마 기름을 계속 넣으리라고 상상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할아버지를 제외한 누가 봐도 그 상태에서 기름을 더 이상 넣을 수 없다고 판단할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할아버지 덕분에 이번엔 기름이 왕창 흘러내렸다. 기름이 분수처럼 넘쳐흘러 시트까지 묻었고 기름은 바닥에 뚝뚝 떨어졌다. 난 그상태에서 기름을 더 넣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기름이 두 번째 넘쳐흐르니까 어이가 없어졌다. 말문이 막혀서 놀란 눈으로 넘쳐흐르는 기름만 보고 있었다. 여기서 끝났을거 같나? 천만에. 할아버지도 이제 못넣겠다고 판단했는지 기름총을 기름탱크에서 뺐다. 하지만 기름총 안에 남아있던 기름들이 다시 쏟아지면서 세 번째로 기름이 넘쳐흐르고 말았다. 그걸 본 순간 이젠 완전히 포기했고 내 정신이 피폐해졌다. 어처구니도 없고 어이도 없고 당황스럽고 황당했다. 뭐라 말을 해야할지 몰라서 머뭇거리다가
  "휴지나 주세요..."
  할아버지도 별말 안하신다. 고객인 나에게 사과를 안한다. 어처구니가 없다. 그래놓고 돈은 돈대로 다 받아간다. 개념이 없으신가? 음. 그런가 보다. 서비스에 대한 개념이 없으신가 보다. 엄연히 말해서 지금 발생한 상황은 그냥 할아버지와 젊은이가 만나 생긴일이 아니다. 한 사람은 이윤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고객에게 피해를 끼친 것이고, 한 사람은 돈을 지불하면서도 제대로된 서비스를 받지 못했다. 아... 짜증나. 그래도 어쩌겠는가. 잊어야지. 잊고 싶다.... 그래 잊고 싶다. 이제 이런일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대로 되지 않는게 새상이라던가... 주유소의 악몽은 계속된다.
  분명한건.. 내가 타고 있던 바이크가 RX라서 참은거다. 만약에 비싼놈이었는데 기름을 그렇게 흘려서 도색이 변질되거나 했으면 안참았겠지. 근데 기름 흘리면 색 변질되는거 맞던가?

[민속촌]

아까 주유소에서 있었던 일은 별로 신경쓰지 않는다. 너무 충격을 먹어서 신경쓸 수 없게 되어 버린 건지도 모르겠다. 정말 다행인건 카울값이 싼 RX였다는 거다. 정말정말 다행이었다. 카울값이 싼 RX에 감사를 하면서 안동에 도착해 버렸다. 원래는 안동댐만 보고 소백산 쪽으로 갈 생각이었는데 안동댐을 보러가는 중에 민속촌이란 곳을 봐 버렸다. KBS촬영장이라고 하던데 자세한건 모르겠다. 민속촌 안으로 들어가니까 차량출입을 금지하기 위해 길을 장애물로 막아놨다. 장애물 바로 옆은 하수도였는데 자칫하면 빠질 지도 몰랐다. RX를 타고 거의 기다시피 하면서 장애물과 하수도 사이를 지나가서 혹시 경비가 쫓아오는건 아닌지 주위를 살피면서 민속촌 안으로 들어갔다. 들어가서 사진을 찍기 시작했는데~

변태나무. 혼자 벗고 있었음.

전용 헬멧걸이.
나를 위해서 KBS측에서 마련해줌.

꺼내줘 ㅠ.ㅠ

누워서 무엇을 보았을까.

바람개비 모양의 구름.
계속 누워있고 싶었는데
날이 점점 어두워져서 일어나버렸다.

갑자기 이 사진을 왜 찍었냐 하면..
밑의 사진을 찍고 싶었는데 다른 사람들 눈치가 좀 보여서
정상사진(?)을 찍는 척하려고. -.-;;;

사진을 찍는동안 날이 어두워져 버려서 그만 길을 떠나야 했다. 민속촌을 떠나는 뒷 모습을 남기고 싶었는데..
삼각대 꺼내기 귀찮아서 바이크만 찍어줬다.

[안동댐에서..]

원래 민속촌은 계획에 없었는데 사진을 찍느라고 시간을 많이 써 버렸다. 바로 소백산 쪽으로 갈까 했지만 민속촌에서 안동댐이 가까웠기 때문에 안동댐 구경만 하고 가려고 했다. 그래서 안동댐에 도착! 했는데 날이 점점 어두워지고 있다. 곧 밤이될거 같았다. 안동댐을 지나서 잘 닦아놓은 도로가 있었는데 나는 그 길이 국도로 연결된 곳인줄 알고 계속 달렸다. 그 길이 아니면 지금까지 왔던 길을 돌아가서 안동시내 쪽으로 가야하는데 그건 아무리 생각해도 번거로운 일이라서 맘에 들지 않았다. 그런데 밤 하면 내가 또 벌그지에 대한 안좋은 추억이 있는데.. 흠.. 일단 사진을 보면서 이야기하자.

  작년에 내 여행기를 보신분은 알겠지만.. 벌레들의 테러는 무섭다. (사진에는 오타. ㅋㅋ) 밤에 운전하다가 벌레들의 영역에 들어가면 저렇게 된다. 그래서 왠만하면 밤에는 운전하지 않으려 했다. 벌레들 무섭다면서 작년의 악몽을 떠올리고 있는데 RX의 라이트에 뭐가 번쩍이면서 내쪽으로 막 달라들기 시작했다. 아직 완전히 어두워진게 아님에도 불구하고 벌레들이 테러를 하기 시작했다.
  '얘네들 혹시 이라크에서 파견온 테러단체 인가 _-_;; 이놈들을 부시한테 다 보내야 되는데.. 거참.'
  중요한건 벌레들이 내게 부딪혀도 터져서 달라 붙지만 않으면 된다. 그래서 속도를 낮추고 천천히 지나가는데.. 그런데 그때! 이런곳이 나타났다!

  삼각대 꺼내기 귀찮아서 그냥 손에 들고 찍었더니 사진이 흔들렸다. 삼각대로 다시 찍을까 했지만.. 난 갈길이 바쁜 몸이다. 벌레들의 테러가 더 심해지기 전에 자리를 떠야한다. 그런데.. 저기 연인끼리 가면 조오오오오~ 케엣~ 따아! 쳇! 퉤! 퀙! 뷁! 뿌렉!
  사진 한 장만 찍고 바로 저길 떠났다. 난 내가 달리고 있는 길이 국도인줄 알았다. 적어도 국도랑 연결된 길인줄 알았다. 그렇게 알고 5분 정도를 달렸을까... 길이 끊기면서 공터가 나왔다. 매점과 횟집이 있고 차들과 사람들이 보였다. 뭐 그런건 상관없고, 중요한건 길이 없다는 것이다. 여기까지 왔으니까 주변이나 둘러보고 가자는 생각이 들어서 난 공터를 한 바퀴 돌았다. 그러다가 밑으로 쭉 뻗은 계단을 봤는데 계단 옆으로 좁은 내리막길도 있다.
  '음.. 계단 타고 내려가면 재미있겠다. 그런데 짐 싣고 할 순 없잖아. 위험해 위험해. 그냥 그만두자. 옆에 있는 내리막길은... 음..저거도 은근히 길이 가파르네.. 내려가다가 브레이크가 밀리면.. 윽! 끝장이다. 여행 접는다 접어. 괜히 내려가다가 날라 버리면 낭패다. 저거도 그만두자.'
  그리고 그 옆에 큰 내리막길이 보인다. 관광버스가 2대 같이 지나갈 정도로 폭이 넓은 길이다. 얼핏보니 국도랑 연결되어 있을거 같지는 않았고 그냥 강가로 내려가는 길인거 같았다.
  '일단 내려가보자. 뭐가 있나 궁금하네.'
  기어를 2단에 넣고 엔진브레이크를 걸면서 천천히 내려갔다. 내려가서 둘러보니 주차장이 있고 주차장과 연결된 계단이 보였다. 주차장에는 자동차 한 대만 서있었다.
  '에... 아무것도 없네. 다시 돌아가자.'
  그대로 왔던 길을 되돌아 갔으면 좋았을 것을.. 나는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보고 말았다. 바로 계단 옆에 있는 경사진 길이었는데.. 아까 공터에서 돌면서 본적이 있는 그 곳이다.
   '내가 계단은 못올라가도 저기는 올라갈 수 있을거 같네. 음.. 아래에서 보니까 경사가 완만해 보이네.. 1단으로 가면 올라갈거 같은데.. 갈까 말까 갈까 말까.. 이리로 올라가면 공터로 빨리 갈 수 있으니까 이리 가보자.'
  나는 뒤에서 탄력을 받아서 기어를 1단에 넣고 풀스로틀을 했다. 이후의 상황설명을 자세히 하기위해 그림을 준비했다. 오르막길은 크게 3단으로 되어있다. 아래 그림을 보자. 빨간색 점의 위치를 앞바퀴가 통과하는 것으로 설명을 하겠다.

1. '좋아~ 잘 올라가~ 제발~ 끝까지 다 올라갈 수 있으려나.'

2. '어 속력이 떨어진다. 풀 스로틀 했는데.. 어어.. 이거 위험하다. 4번을 지나서 멈춰야겠다. 우선 멈춰놓고 뒤로 내려오던가 해야지. 중간에 멈추게 되면 브레이크 잡아야 된다. 브레이크 잡는다고 중간에서 멈출 수 있을까?'

3. '어어.. 안되는데 속력이 다 떨어졌다. 위에까지 못올라가겠다. 삽대따. 이대로 멈춰 버리면 어떻해. 뒤로 미끌릴거 같은데.. RPM이 점점 떨어진다. 이대로 시동이 꺼질거 같은데.'

4. '젠장 시동이 꺼졌다. 조금만 더 가지!!! 브레이크. 브레이크 잡아야되!'

앞바퀴가 4번에 걸쳐진 순간 바이크는 완전히 멈춰 버렸다. 그 순간 내가 앞브레이크를 잡고, 시동이 꺼지는 것을 막는다고 본능적으로 클러치를 잡는 순간.. 바이크는 뒤로 미끌어지기 시작했다. '끼이이이익~~~' 순식간에 나는 뒤로 내동댕이 쳐졌다.

우리가 평소에 이런 경험을 하기란 쉽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RX가 뒤로 미끌리기 시작했을 때를 천천히 묘사해보자. _-_;;

  앞브레이크를 잡으며 클러치도 잡아 버렸다. 그 순간 바이크는 뒤로 미끌리기 시작했는데, 뒤로 미끌리지 않으려고 발로 옆의 벽을 지탱해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앞브레이크를 잡았지만 앞바퀴가 허무하게 미끌려 버렸다.
  '지금 넘어져 버린다면 운이 없을 경우 제대로 갈려 버리는 수가 있다. 넘어져도 최대한 바닥까지 내려간 뒤에 넘어져야 적게 다친다. 내가 할 수 있는건 핸들을 똑바로 잡는 것 뿐이다.'
  사실 저렇게 고운말 써가면서 생각한건 아니고, 생각한 내용을 그대로 적으면
  '자빠지면 좆된다. 꽉 잡아라.'
  이거다. 물론 윗글의 뜻이 함축된 내용이다. 아무튼 운이 좋게도 반 정도는 핸들이 털리지 않고 균형을 잡으며 잘 내려왔다. 하지만 곧 핸들이 털리기 시작했고 잠시 뒤에는 내 몸이 뒤로 날라 버렸다. 왜 날랐는지도 모른다. 몸이 뒤로 날라갔는데 금방 땅에 툭! 떨어졌다. 날라갔다기 보다 튕겨져 나갔다는 표현이 비슷한거 같다. 뒤로 튕겨져 나가면서 왼쪽 종아리 근육이 무엇에 부딪히는 느낌이 났다. 그 외에는 멀쩡했다. 종아리에 뭐가 부딪히는 순간
  '악! 내 다리. 부츠 신을걸..'
  하지만 종아리가 약간 결리는 것 뿐이었고 큰 부상은 없었다. 뒤로 떨어졌기 때문에 허리가 아프고 헬멧에 기스가 나지 않았나 걱정을 했지만, 알고보니 내가 산 가방에 부츠를 넣어뒀었는데 그것이 완충역할을 해준 것이다.
  '어.. 이놈도 알고보니 보호대가 되네. 특허 낼까... 악! 맞다. 내 디카!!!!!!!!!!!!!!!!!!!!!!!!!!!!!'
  몸에 다른 곳이 다쳤는지 확인하기도 전에 디카가 걱정되었다.
  '지금까지 찍은거 날라가면 어떻해. 메모리가 살아있어도 앞으로 못찍으면 그건 또 어떻해. 여기서 여행 끝나는건가? 제발 작동되라... 제발..'
  아파서 그런게 아니라 디카가 걱정되어서 손을 부들부들 떨면서 디카를 꺼내어 작동시켜 봤다. 엇! 화면도 제대로 뜨고 디카에 기스하나 없다.
  '아... 다행이다. 살았다..'
  디카를 들고 사진을 찍으려고 일어섰다.
  '이것도 찍어서 남겨야지.. 근데 사진부터 찍는게 잘하는 짓인가? 에잇. 몰라. 찍어두자. 나중에 온존에 올려야지. ㅋㅋ'
  디카를 들고 일어서는 순간 발목에 통증이 약간 왔다. 심한건 아니고 약간 삔 정도였다. 일단 사진을 찍었다.

  사진을 찍었으니 이제 RX를 세워서 상태를 확인해야 한다. 세우려고 보니까 바닥에 기름이 꽤 많이 흘러있었다. 기름이 흐르는건 넘어지면 있는 일이니까..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RX를 세우려고 했는데 핸들이 계단 손잡이 사이에 끼어서 도저히 빠지질 않는 것이다.
  '이제 여행 접어야 하나.. 집에서 사고난거 알면 엄청 걱정할텐데.. 용달 부를까? 겨우 여기서 끝나나? 사진도 끝이고 여행기도 끝이네. 사람들이 웃겠다.... 이럴 줄 알았나?ㅋㅋㅋ 바이크가 조금이라도 굴러가는 이상 포기 안해. 겨우 이깟일에 하던일을 포기하면 니 인생은 없다.'
  국산 바이크는 약하다는 말을 많이 들어서, 이정도 넘어지면 차대가 휘어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못타는건줄 알았다. 얼마전 어떤 분께서 타지에서 사고가 나셨는데, 아는 사람들에게 연락을 했더니 도와주러 왔더라는 이야기가 생각났다. 하지만 난 휴대폰도 없다. 그리고 도움을 청할 사람도 없었다. 있다면 가족 뿐이랄까. 남에게 피해주고 싶지도 않았다. 무엇보다 혼자 해결하고 싶다. 겨우 이까짓 일 정도는 혼자 해결하고 싶단 말이다. 인맥의 힘을 빌리고 싶지 않았다. 일단 RX를 세워서 상태를 확인해야 했는데 혼자 힘으로 사태수습이 불가능하다고 여겨 일단 계단을 뛰어올라갔다. 어떤 아저씨가 승용차에 타려고 하고 있었다.
  "실례합니다. 저 밑에 바이크가 사고났는데 혼자 수습이 안되어서 그런데 죄송하지만 좀 도와주세요."
  "저 앞에 경비실 있으니까 그리 가서 말하세요"
  그러면서 그냥 차에 타 버린다. _-_;;
  '이런 젠장. 좀 도와주면 덧나냐!'
  뭐 이런사람도 있는 법이다. 다른 곳으로 가서 20대로 보이는 남자에게 다시 도움을 요청했다.
  "실례합니다. 저 밑에 바이크가 사고나서 그러는데.. 조금만 도와주세요. 그냥 바이크 세우는거만 좀 도와주시면 되요. 힘 조금만 쓰면 되거든요. 혼자 좀 힘들어서.."
  "네 그럴께요. 어디에요."
  "고맙습니다. 별로 안멀어요. 바로 밑이에요."
  사고난 장소로 와서 두 사람이 같이 하니까 핸들이 쉽게 빠진다. RX를 세우고 살펴봤는데 클러치가 부서진거 말고는 멀쩡한거 같았다. 클러치 케이블을 잡아당겨 기어를 중립에 맞추고 시동을 걸어봤다. 어렵지 않게 시동이 걸렸다. 일단 시동만 걸려도 어느정도는 움직일 수 있다고 판단하고, 그 분께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보냈다. RX를 세워두고 위에 올라가서 다시 사진을 찍었다.

  벌써 어두워져 버려서 사진도 잘 안찍혔다. RX가 있는 곳으로 내려가서 이곳저곳 살펴봤다. 시동도 다시 걸어봤다. 확실히 클러치가 부서진거 외에 다른 문제는 없다. 핸들 정도는 휘어졌을 줄 알았는데 핸들도 멀쩡했다.
  '클러치 말고는 쓸 만하네. 탈 만하구만. 이거가지고 뭘 그만둬. 이정도면 달리는데 충분해. ㅋㅋㅋ 바이크가 달릴 수만 있다면 이번 여행은 끝나지 않는다. 그런데 클러치 사용하지 않고 어떻게 타지? 클러치 안쓰고 기어 바꾸는걸 해야하나? 일단 여기서 나가야 하는데.. 용달 부르면 돈 들어서 안돼. 이걸 고정시킬 수 없을까.................... 음... 아 맞다! 전기 테이프!'
  작년에 CB400 탈 때 배선을 건드릴 일이 있어서 전기테이프를 사용했던 적이 있다. 그걸 사용하고 나서 탱크백에 넣어뒀었는데, 내가 짐을 챙기면서 전기테이프를 가져가면 유용하게 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대로 가져온 것이다. 테이프를 꺼내어 작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제목은 깁스한 클러치

  이제 슬슬 출발하려고 했는데 갑자기 뒤에서 무슨 소리가 들렸다. 자동차 시동거는 소리다. 놀라서 뒤를 돌아봤더니 주차장에 홀로 서있던 자동차가 움직이는 것이다.
  '어라? 분명히 사람은 오지 않았는데.. 처음부터 저기에 사람이 타고 있었단 말인가? 그럼 내가 하는 짓 다 봤겠네 _-_;;;;'
  으악!!!!! 이렇게 쪽팔리는 일이.. 있을수가.. 생각을 해보자. [어떤 녀석이 노란색 바이크를 타고 와서 주차장을 한 바퀴 돌더니 갑자기 길도 아닌 곳으로 올라가려고 발악을 하다가 뒤로 쭈르르르르륵~ 미끌려서 자빠지더니 혼자 바이크를 일으키지 못해서 낑낑대다가 어딜 가더라. 잠시후에 한 명이 더 내려오더니 바이크를 세우고 아까 그 어떤 녀석만 남았다.] 이렇게 봤을거 아니냐구. 게다가 난 분명히 들었다. 그 자동차가 움직이면서 그 안에서 '히히히히 키키키키 낄낄낄낄' 요렇게 웃는 것을.
  '니들이 인간이냐!!! 보고 있었으면 좀 도와주면 덧나냐고!!!!!!!!!!!!!!!!!!!!!!!!!!!!!!!!!! 치사빤스!'
  아... 마음을 진정시키고 짐을 다시 실었다. 그리고 부츠도 꺼내서 신었다. 아까 넘어질 때 짐도 같이 내동댕이 쳐졌는데, 그물의 갈고리가 하나 부서졌었다. 마침 예비 갈고리가 2개 있었는데 그 중에 하나를 썼다. 만약에 갈고리가 없었다면 짐을 어떻게 들고 다녔을지 상상이 안간다. 실제로 그런일이 일어났다면 요령껏 잘 했겠지만.

사태를 수습한 후.

   아까 그 공터로 돌아가서 매점 앞에 바이크를 세웠다. 정보가 필요했다. 매점에서 음료수를 하나 사마시면서 이것저것 물어봤다. 가까운 오토바이 센터는 어디냐, 여기 잘 만한 곳은 없느냐는 둥.. 필요한 것을 물어봤다. 센터는 근처에 없고 안동시내까지 나가야지 된다고 한다.
  '아... 귀찮아. _-_;;;'
  그러고 보면 민속촌으로 올 때부터 되돌아가야만 하는 길로 와 버리고 만 것이다.
  '소용없는 후회는 하지 말자. 앞 일이나 생각하는게 현명한 선택이다.'
  평지에서 운전해보니 차대나 밸런스에 전혀 문제 없었다. 운이 좋았다. 아니면 원래 RX가 튼튼한가? 그것도 아니면 작은 사고였나보다.

[센터를 찾아서]

   이제 센터를 찾아가야 한다. 시간은 늦은 8시가 다되어 간다. 클러치를 사용하는데 불편하기는 했지만 그럭저럭 쓸만했다. 바이크가 굴러가기만 해도 난 포기하지 않는다니까. 시내로 들어가서 자전거를 타고 있는 사람에게 바이크 센터가 어디있냐고 물어봤다. 잠시 생각하더니 자기를 따라오라고 한다.
  '아이 고마워라'
  그런데 직접 안내까지 받은 그곳은 벌써 문을 닫고 영업을 하지 않았다.
  '지금이 몇 시라고 벌써 문을 닫노. 돈을 많이 벌었나. 장사를 하기싫나.. 아직 8시도 되지 않았단 말이야! 뭐 사장맘이지 뭐..'
  다른 곳은 모르냐고 하니까 대략적인 방향만 알려준다. 일단 가르켜준 곳으로 가다가... 아! 길 물어서 찾는 과정은 생략 하기로 했지! 일단 다른 센터에 도착했다. 센터 부근에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애들이 4~5명 서성이고 있다. 그들이 나를 보더니 숙덕거린다.
  '보호장구 때문인가? RX를 처음보냐? 왜 보냐. 신기하냐? ㅋㅋㅋ 그럼 많이 봐라.'
  센터에 들어가서 클러치를 교환하려 했지만 부품이 없단다. 게다가 내일은 일요일 이라서 영업을 안하므로 월요일에나 고칠 수 있단다. 내가 여행중이라서 잘 곳도 없고 월요일까지 기다리기 힘들다고 했더니 효성대리점에 전화를 해보라면서 전화를 넘겨주신다. 직접 전화를 해보니까 거기도 부품이 없단다. 그리고 벌써 영업 마쳤단다. 일단 급한 대로 응급조치를 해준다고 하시면서 클러치에 감긴 깁스를 풀었다. _-_;;

  다시 철사와 케이블타이(쫄쫄이)로 클러치를 고정시켰는데 좀 덜렁거리더라. 차라리 내가 시술한 깁스가 낫다고 생각이 들었다. 이제 어쩌나 싶어서 혼자 생각을 하고 있는데 수트를 입으신 분이 오셔서 나에게 말을 걸었다. 나는 내가 여행중이란 것을 말하고 이런저런 대화를 했는데, 그 분은 내일 투어를 가신다고 하셨다. 아고보니 R1오너였다. 혹시나 내일 투어에 꼽사리 껴볼까 싶어서 이렇게 물어봤다.
  "배기량 큰 녀석들끼리 가면 막 쏘면서 달리겠네요?"
  "네. 알차들은 빨리가죠."
  '못따라 가겠군 _-_;;'
  이야기를 좀 더 나누다가 그 분은 식사하러 가시고 나는 또 혼자있게 되었다.
  '피시방 가서 좀 쉬면서 생각을 해보자.'
  아까 날 쳐다보던 녀석들에게로 다가갔다.
  "여기서 가까운 피시방 어디있어요?"
  "저기 나가서 오른쪽으로 가면 큰 길이 있는데 .. 생략.."

[잠자리를 찾아서]

피시방을 찾아가 1층 계단 옆에다가 바이크를 세워두고, 짐은 가지고 피시방에 들어갔다. 온존에 접속해서 대화방을 열고 채팅을 하면서 생각을 했다. 이제 어디로 갈 것인가에 대해서. 그리고 오늘 밤은 어떻게 보낼건지에 대해서.

'사고 날 수도 있는거야. 심하진 않잖아. 까불다가 자빠지긴 했지만. ㅋㅋㅋ

그나저나 이거 쪽팔려서 어떻게 올리지? 여행후기 쓸 때 걱정되네.

장르를 개그나 엽기로 정해놓고 글을 쓸까? ㅋㅋㅋ

원래 시골 같은데서 바이크 고장나서 센터에 가게되면

RX부품이 잘 없어서 주문을 해야 되니까 하룻 밤 묵으면서

일도 좀 거들어보고 이럴려고 했는데

그런거 도시에서는 절대 안먹히잖아. 에휴.

게다가 내일이 일요일이라서 어떻게 할 수도 없고 말이야.

평일이었으면 아까 센터에서 말이라도 꺼내봤을텐데.

다음에 타이어 펑크나면 꼭 해봐야지. ㅋㅋㅋㅋ

근데 오늘 밤은 어쩌지. 피시방에서 잘까?

아니면 안동댐 주변에서 잘까.

아까 자빠진 장소가 맘에 안든다. 거기에 가서 자야겠다.

자빠진 바로 그곳에다가 침낭 깔고 자 버려야지.

건방진 오르막! 댐벼!

아깐 어두워서 사진도 제대로 못찍었으니까

거기서 자고 일어나면 바로 사진찍어야지.

그건 그렇고 아까 올 때 보니까 댐으로 가는 길에 조명이 이쁜 다리가 있던데

올 때는 정신이 없어서 사진을 안찍었지만 가면서 사진도 찍어야겠다.

클러치 고치기 전 까지 소백산에도 못가겠다.

내일은 서울로 가자. 서울에는 부품을 쉽게 구할 수 있을테니까.

이제 피시방온지 1시간이 다 되어가네.

슬 나가보자.'

계산을 하고 피시방에서 나와 버렸다. 종아리와 발목에 통증이 있지만 별거 아니다. 클러치가 덜렁거리는 RX를 타고 안동댐으로 되돌아갔다. 가는길에 아까 봐둔 다리가 나왔다. 바이크를 세워두고 삼각대와 디카를 꺼내들었다.

  다리가 멀리도 있다. 후딱 사진을 찍고 사고난 장소로 달려갔다. 역시나 가는길에 벌레들의 테러공격을 받게 되었는데, 아예 라이트를 꺼 버렸다. 가로등도 없는 산길에서 밤에 라이트를 끄고 달리는건 위험한 행동이지만 나에겐 벌레가 더 위험한 존재이다. 사실 달빛에 비쳐서 길이 조금은 보였다. 그래도 사실은 매우 위험하다. 따라하지 맙시다. 벌레 피하려다가 저승사자 만납니다. 알면서 난 왜 했냐고? 내맘이야! 암튼 사고난 곳에 도착해서 들어갈려고 했는데 길이 다 막혀있었다. 쇠사슬로 막아놓았는데, 밤이 되어서 막아놓았나 보다.
  '얼씨구. 그럼 나보고 어디서 자라는거야! 엉!'
  난 근처를 둘러보면서 침낭을 깔 만한 곳을 찾아봤지만 전혀 없었다. 이렇게 되면 여기있을 이유가 없다. 그래서 안동댐으로 내려가서 휴게소에 RX를 세워두고 잠시 쉬었다. 그런데 왠지 여기서는 꼭 자고말겠다는 오기가 생겼다.
  '정말 되는 일 없네. 내가 여기서는 무조건 잔다!'
  일단 쟈켓을 벗었다. 그리고 다이어리를 꺼내어 오늘 일을 기록했다. 그러던 참에 갑자기 이상한게 손위로 날라와 앉아 버렸다.
  '힉~~~~ 놀래라.'
  그것은 바로...

이녀석이다. 난 이런 작은 녀석들과 무슨 인연이 있나? 아래는 1년전 여행에 등장한 땅강아지다.

  1년 전에는 땅강아지가 내 헬멧 속으로 들어가서 숨더니, 이번엔 일기쓰는데 여치? 메뚜기? 유재석? _-_; 아무튼 다리 한 쪽은 어디다 버려두고 온건지 모를 이 녀석이 파다닥~ 날라와서 내 손에 앉아 버렸다. 천천히 일어나서 디카를 꺼내고 사진을 찍을 동안 이 녀석은 가만있었다. 사진을 찍고나니 또 어디론가 날아가 버리는 녀석. 이녀석도 사진을 좀 찍을 줄 아는 녀석이었다. 저 땅강아지도 사진 좀 찍을 줄 알던데. 허허 재미있는 일이다. (나중에는 xx가 등장한다.)
  일기를 다 쓰고나서 주위를 둘러보니 커플 천지다. 세상에.. 커플늠들이 와서 난리다 난리. 친구끼리 온 사람들도 있고.. 그런데 혼자는 나 뿐인거 같다.
  '뭐 상관있나. 내가 짱이다.'
  잠자리를 찾기 전에 매점으로 들어갔다. 기분이 조금 안좋아서 뭐라도 먹고 싶었다. 그러고 보면 난 스트레스 풀 때 뭘 먹는 습관이 좀 있는거 같다. 그런데 왜 살이 안찌지? 흠.. 아무튼 먹을 걸 고르다가 마땅히 먹고 싶은게 없다. 그래서 맥주랑 과자 하나를 샀다. 맥주 마시고 나서 운전 안하고 잘거니까 상관 없을거 같아서 술도 상관 없었다. 원래 음식은 밖에 나와서 먹어야 하는데, 나는 그러기 싫었다. 밖은 추웠다. _-_;;; 마침 옆에 커피숍이 있었는데 보아하니 한 명이 같이 관리하는거 같았다. 나는 일하는 아가씨에게 커피숍에서 좀 먹고 나가면 안되냐고 물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 때 옷을 또 거지같이 입고 있었구나. _-_;;) 다행히 아가씨가 먹고 가라고 허락했다. 다른 짐은 밖에 두고 디카만 들고 들어왔다.

  술을 한 모금 마셔서 그런가? 밖이 추워서 그런걸까. 아니면 아까 사고난 뒤로 몸이 진정을 하지 못하고 있는걸까. 사진을 찍는데 손이 덜덜 떨린다.
  '휴..'
  한숨이 나왔다.
  '이거 먹고 자야지..'
  맘을 진정시키려고 술을 마신건 아니다. 난 담배나 술의 힘을 빌려서 자신을 통제하는걸 좋지 않게 생각한다. 그런 것 없이도 자신을 다스릴 줄 아는 사람이 강한 사람이다. 그냥 혼자와서 밤에 맥주 한 병을 마셔보고 싶었다. 정말루~ ㅋㅋ
  술을 다 마셨다. 원래 술에 약한 것도 있지만 이상하게 한 병만에 취해 버렸다. 몸 상태가 별로 좋지 않았나 보다. 커피숍을 나와서 침낭을 깔 만한 곳을 찾았다. 원래는 안동댐에 몰래 들어가서 댐 위에서 자려고 했었다. 짐을 들고 댐에 몰래 들어가려고 하던 찰나에! 이 따위 경고문이 보였다.
  '수상한 사람이 보이면 경찰이나 군대에 즉시 신고 하세요. 그리고 여기에 함부로 들어가면 잡아간다.'는 내용이었다. 테러나 안전사고를 방지하기 위한건지 몰라도, 그 경고문은 날 겁주기에 충분했다. _-_;;
  '에이.. 저기 아니라도 잘 곳 많네~ 괜히 들어가서 잡히지 말어~ 이런 이벤트는 만들지 않아도 된다고 _-_;;; 제발 참자. 응?'
  댐 위에서 자는건 포기하고 다른 곳을 알아봐야 했다. 우선 바닥에 손을 대어서 바닥이 습하지 않은지, 차갑지 않은지 확인을 했다. 그러던 중 어느 기념비가 있는 곳 옆의 땅 상태가 괜찮은걸 발견했다. 짐을 모두 옮겨놓고 침낭을 깔았다. RX는 주차장에 세워뒀고, 난 거기서 50m정도 떨어진 곳에서 자기로 했다. 짐과 침낭은 길에서 보이지 않도록 잘 숨겨서 배치했다. 그리고 사진을 한 장 찍었다.

저기 바닥이 정말 좋았다. ㅎㅎㅎ 역시 자기전에 벌레에 물리지 않도록, 벌레가 싫어하는 약을 침낭 근처에 뿌리고 누웠다. 춥지는 않았다. 다만 왼쪽 다리가 아팠을 뿐..
'이 통증은 언제 없어지려나.. 자고나면 없어졌으면 좋겠다.............. 내일 일어나면 사고난 곳에 사진 찍으러 가야지... 아... 좋다..... 여기도 별이 많이 보이네...'